묵상

살아있는 이.. 살려주는 이..

하기오스 2014. 12. 26. 09:34

고전 15:45-52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크리스천의 목적은 살려주는 이..이다.

첫사람 아담은 생령.. 살아있는 이였다. 하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살려주는 영으로 살아야 한다.

 

살아있음은.. 참으로 중요한 가치이다.

왜냐하면.. 이미 죽어 있기에.. 이미 죽은자이기에..

그래서.. 살아있고자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천의 정체성은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것.. 그것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이를 살려주는... 바로 그러한 삶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어쩌면.. 나 역시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내가 살아있는 자로 서는 것...

이것이 중요한 가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시금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살려주는 이... 가 되라는 것이다.

살려주는 이... 로 살라는 것이다.

 

살려주는 이.. 여야 하기에.. 이미 살아있어야 하고.. 그 살아있음은 차원이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살려주는 이.. 답게.. 보다 다른 삶을 살아가자..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 살려주는 이.. 답게 생각하고 살아가자.

 

시작될 믿음의 경주들.. 살아있고.. 더 넘어서 살려주는 자.. 답게..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