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까지 사용하신다..
민 22:31-41
22:3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22:32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22:33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22:34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22:35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22:36 발락은 발람이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
22:37 발락은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
22:38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22:39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
22:40 발락이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 한 고관들을 대접하였더라
22:41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결국..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셔서 발람도 보게 된다.
그리고.. 기뻐하시지 않으시면 돌아가겠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발람에게 가라 하신다.
가서 하나님께서 이르시는 말만 하라 하신다..
왜 하나님은 발람에게 가라 하신 것일까?
사실.. 발람의 시작은 죄성이었다.
물론.. 두번의 찾아옴 이후에 하나님께서 가라 하셨지만..
그것은 발람의 내면에 있는 죄성...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 하셨음에도 미련을 가진 발람의 마음 때문이었고..
그래서.. 가는 길에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경고하신 것이었다.
가되..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만. 하라고...
즉, 죄성..이었던 것이다.
왜 하나님은 그러한 발람의 죄성..을 아시면서도 가라하시고.. 경고하시면서까지 가라.. 하신 것일까?...
차라리.. 처음부터.. 아니면.. 도중에라도 못가게 하시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발람... 가고 싶었던 발람.. 죄성에 기인한 발람..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길 원하셨던 것이다.
발람을 통해 발락에게 오히려 이스라엘의 영광..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발람..은 사실.. 그저 그 일에 사용된 도구..였던 것이다.
그저 어리석은 인생... 그 인생을 하나님의 일하심에 사용한...
물론.. 발람이 그 쓰임받음 이후..에라도 온전히 돌이키면 그의 삶은 은혜가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말씀이 보여주듯.. 어리석은 발람은 이후에도 더 무서운 죄를 짓기에 그저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용하신다.
선하고.. 온전한 것만이 아니라.. 어리석은 연약하고.. 죄성.까지도..
그래서..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이루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그 안에서.. 분명쓰임받게 되는데.. 바르고 온전히 쓰임받아야 하는 것이다.
발람처럼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온전히 쓰임받아야 할 뿐 아니라.. 혹... 어리석음의 과정이 있었다면.. 그 후에라도 다시 돌이키는 것..
여기에 쓰임받음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온전히 쓰임받는 자..의 삶을 살자..
깨어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건데.. 온전하게.. 바르게. 하나님의 기뻐하심대로 쓰임받는 하루..를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