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붙드는..
행 28:11-22
28: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28: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28: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28: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28: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28: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28: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28: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8: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8: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8: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로마에 도착한 바울 역시..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한다.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했고 그들과 대화한다.
그리고, 그 대화중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울의 중심.. '이스라엘의 소망'과 이러한 바울과 그의 중심이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다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이스라엘의 소망.. 즉, 이스라엘이 온역사를 통해 그토록 바라던 소망.. 메시야의 이야기인데..
정작.. 그 소망.. 메시야의 이야기앞에서 많은 유대인들은 반대했다..는 것이다.
진리를 만났으나, 진리앞에서 거부하고 외면한 것이다.
이전에도 묵상한 기억이 있다.
이 차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진리앞에서 소망으로 붙들게 되는 것과 진리앞에서 거부하고 반대하게 되는 이유..
진리를 진리로 받지 못하게 하는 것들 때문이리라..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 고집이든..
아니면, 그렇게 선택하게 하는 온갖 인간의 문제들..이든..
적어도 바울은 그 진리앞에서 소망...으로 붙잡은 자..였고..
그래서 그는 그에 맞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나의 삶도 그러해야 한다.
다른 조건이나 만족.. 이 아니라... 진리앞에서 소망으로 온전히 붙들릴수 있는.. 그런 삶...
오늘도 시작된 하루.. 진리앞에서 소망으로 붙드는 인생이 되자.
이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고.. 버리는 하루..를 살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