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믿음으로 살리라..

하기오스 2011. 11. 7. 06:56

갈 3:8-14

3: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분명 율법과 믿음은 통하는 것인데..

율법의 완성이 은혜요, 믿음의 실천은 율법이기 때문이다..

 

중심의 문제이다..

내중심이 전적으로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이다.

똑같아 보이지만, 중심으로 인해서..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그 중심이 하나님께로 맞추어져 있어서.. 결코..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즉,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추상적이다.. 공허함에 머무는 표현이다..

하나님을 바라본다.. 하면서도.. 여전히 결과에 연연하는. 율법적인 삶의 모습이 있지 않는가..

 

하나님을 바라봄의  보다 더 구체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내게 있어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최선을 다함이다.. 온힘을 다 쏟아놓았을때.. 내욕심과 내생각, 내주장을 부릴 힘마저 없을때..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결과에 연연하게 된다는 것은.. 결국..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요즘 나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저런상황과.. 바쁜 일들속에서.... 최선의 의미가 사라졌었다..

최선이 아니.. 하나하나를 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러면.. 매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 결과에 연연하게 된다..

 

다시금 최선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앞에서 최선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