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인식하라
하기오스
2012. 7. 5. 06:20
룻 1:19-22
1: | 19 |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
20 |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
21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 |
22 |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
베들레헴에 돌아오게 된다.
사람들은 나오미를 부르며 맞이한다.
하지만,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를 풍족하게 나갔다가 비어 돌아오는..
여호와의 징벌이 있었음을 고백하며, 자신을 마라 라 부르라 한다..
나오미.. 그는 진정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였다..
굳이.. 마라라 부르라..는 말 할 필요가 없었다.
굳이.. 여호와께서 자신을 치셨다..라고 말할 필요도 업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왜?
그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속에.. 하나님의 일하심속에 있었음을..
비록, 괴롭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안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오미는 모압땅으로 가기를 주저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남편이 요구하니.. 어쩔 수 없이 따랐는지도..
여하튼.. 나오미는 하나님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나의 모습도 그러해야 한다.
그저, 우연히.. 는 없다..
철저한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섭리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인식하며, 그 하나님과 관계하여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내게 싫은.. 불편한 상황.. 답답한 현실의 문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 안에 있다..
신뢰하며.. 감당하는 하루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