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17-3:17
2: | 17 | 전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 사람들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십오만 삼천 육백 명이라 |
18 | 그 중에서 칠만 명은 짐꾼이 되게 하였고 팔만 명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삼천 육백 명은 감독으로 삼아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 | |
3: | 1 |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
2 |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지 넷째 해 둘째 달 둘째 날 건축을 시작하였더라 | |
3 |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놓은 지대는 이러하니 옛날에 쓰던 자로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며 | |
4 | 그 성전 앞에 있는 낭실의 길이가 성전의 너비와 같이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백이십 규빗이니 안에는 순금으로 입혔으며 | |
5 | 그 대전 천장은 잣나무로 만들고 또 순금으로 입히고 그 위에 종려나무와 사슬 형상을 새겼고 | |
6 | 또 보석으로 성전을 꾸며 화려하게 하였으니 그 금은 바르와임 금이며 | |
7 | 또 금으로 성전과 그 들보와 문지방과 벽과 문짝에 입히고 벽에 그룹들을 아로새겼더라 | |
8 | 또 지성소를 지었으니 성전 넓이대로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도 이십 규빗이라 순금 육백 달란트로 입혔으니 | |
9 | 못 무게가 금 오십 세겔이요 다락들도 금으로 입혔더라 | |
10 | 지성소 안에 두 그룹의 형상을 새겨 만들어 금으로 입혔으니 | |
11 | 두 그룹의 날개 길이가 모두 이십 규빗이라 왼쪽 그룹의 한 날개는 다섯 규빗이니 성전 벽에 닿았고 그 다른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오른쪽 그룹의 날개에 닿았으며 | |
12 | 오른쪽 그룹의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성전 벽에 닿았고 그 다른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왼쪽 그룹의 날개에 닿았으며 | |
13 | 이 두 그룹이 편 날개가 모두 이십 규빗이라 그 얼굴을 내전으로 향하여 서 있으며 | |
14 |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고운 베로 휘장문을 짓고 그 위에 그룹의 형상을 수놓았더라 | |
15 | 성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높이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 |
16 | 성소 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 |
17 |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
성전이 건축된다.. 그 건축에 동원된 사람들의 수가 이방사람.. 십오만 삼천 육백 명이었다..
성전을 건축한다.. 그런데, 이에 동원된 사람들은 이방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성전건축에 왜 이방인들이.. 이방인들만 사용되었나?
찾아보니.. 이방인들만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만명정도가 동원되었다..
그래서.. 총 18만명이 동원된 성전건축의 역사...
그래도.. 궁금한건...
성전건축에 이방인들이 참여한 것의 의미였다...
아니.. 이방인들의 수가 많은 것의 의미였다..
왠지.. 이방인들이 단순노역의 수단.. 고통받음의 의미가.. 느껴졌다..
힘든일이어서.. 이방인들이 많이 고용이 된 걸까?...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은혜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역사이기에.. 고되고, 힘들 수 있지만..
그 일들은 결국.. 단순한 노역이 아닌.. 그들의 생계수단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즉, 노예로서 부림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을 통해.. 생을 이어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당연히 그들이 해야할 일이기도 했다..
여호수아에서 기브온거민이 받은 저주같은 축복.. 성전에서 일하는 자가 될거라는...
그러면, 당연히.. 성전건축에.. 함께 쓰여져야 함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위대한 역사..
사실, 이런 고민이 든 것은.. 성전..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 역사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수힘이 아닌.. 이방인들의 힘이 들어갔다는 것이.. 왠지 불편함으로 다가온 것인데..
반대로..
이방인들이 이 위대한 사역에 동참함으로 인해..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백성됨을 인정받음의 의미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방인들의 성전건축의 참여는.. 사실.. 온전한 은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때로는. 쓰임받는게.. 사용되는게.. 노역처럼.. 고된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목적과 뜻을 안다면.. 달라진다..
오히려 은혜이며.. 복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쓰임받으며.. 그일에 일부가 되는..
오늘 하루.. 이러한 쓰임받는 하루의 삶이 되길 소망한다..
수요설교... 새벽설교... 연청강의... 영어예배.. 청년설교.. 리더모임.. 개인교제등...
사실.. 요즘 부하가 걸린듯한 마음에.. 더 지치는 듯 하다..
그러나.. 기억하자.. 쓰임받음이라는 사실을..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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