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9:1-12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9: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9: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9: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9: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9: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사도로서 모든 권리가 있었던 바울.. 하지만.. 그는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비록.. 그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사도성에 의심을 받게 된 것이지만..
그는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참았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고..
즉,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복음을 전하는 것.. 복음이 전파되는것..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복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아니.. 복음을 위한 삶이라기보다는..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데 치뤄야 하는 댓가..를 져야 하는..
사실.. 피하려고 하면 피할 수 있는 길도 있었다.
적당하게 사명? 이라고 불리우는 자리에 서서 그렇게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하지만.. 자의반 타의반.. 하나님은 지금의 상황으로 인도하셨고..
다른 사람들이 볼때는.. 대책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그런데..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복음다운 삶.. 공동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다른 길이 없다.
그저 적당히는.. 가능해도..
보다 본질적인 복음의 삶.. 공동체적인 삶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불가능할수밖에 없는...
그렇다면.. 져야 하는 것이다. 가능한.. 실현가능한 삶을 선택하는 댓가.. 져야 하는 것이다.
바울처럼.. 충분히 권리가 있었고.. 다른 사도들처럼 평범한 사역..할 수 있었지만..
자신은 권리를 쓰지않고, 범사에 참음으로 사역했듯이..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바울의 길.. 따라가자.. 의심하지 말고.. 가자..
이시대 온전한 복음의 삶과 공동체적인 삶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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